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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한 병사가 너라며?지옥의 군생활이 시작됐다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1-②]

  • 박형주
  • 2015-04-06
  • 조회수 265
http://www.ohmynews.com/NWS_Web/Tenman/report_last.aspx?CNTN_CD=A0002090820&srscd=0000011361&srsno=1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1-②]'왕따·전출'... 윤 일병 사건' 내부고발자의 시련
강민수 기자 | 15.04.01 13:50
 
여기 회사를, 조직을, 동료를 '배신한' 사람들이 있다. 조직의 부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된 사람들, 바로 내부고발자다. 그들의 용기는 현실을 바로 잡았지만 해고와 전출, 따돌림을 당했다. 무엇이 그들을 고발하게 만들었을까? 관심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말]
 
*1편에 이어집니다.
 
김재량 상병이 잠든 새벽 1시경, 불침번이 그를 깨웠다. 포대장이 부른다고 했다. 포대장실로 가자 김아무개(27) 대위가 "아까 전화하면서 했던 얘기, 내일 헌병대 가서 똑같이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 상병은 "제 신분이 드러나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위는 "왜 나에게 이 얘기를 해준 거냐" 하고 물었다. 김 상병은 말했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도저히 양심에 찔려서 입 닫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김 대위는 고민에 빠졌다. 네 명의 의무반 선임병들이 입을 맞춰 "화목한 분위기였다", "특이한 일은 없었다"라고 폭행을 부인했기 때문.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당시 의무반에 2포대 소속 김아무개(21) 일병이 입실해 있었던 것이다. 김 대위는 당장 김 일병을 불렀다. 오전 2시경이었다.
 
처음에 김 일병은 모른다고 잡아뗐다. "자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의무반 선임병인 이 병장이 "김 일병은 자고 있었던 겁니다"라고 압력을 준 탓이었다. 김 대위는 "지금 승주가 매우 위험하다, 본 것을 모두 알려 달라"고 설득했다. 그러자 김 일병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김 일병의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4월 6일 오후 3시 30분경, 침상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일어났습니다. 윤승주 일병이 선임병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윤 일병이 선임병 4명과 냉동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이아무개(27) 병장이 대답을 똑바로 못하냐고 하면서 윤 일병의 뺨을 4대 폭행하였습니다. 그때 입안에 들어 있던 음식물이 입 밖으로 나오자 이 병장이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핥아먹으라고 하여 윤 일병이 핥아먹었습니다.
 
이어 이아무개(22) 상병이 '선임병이 질문을 하는데 왜 대답을 똑바로 하지 않냐'며 손바닥으로 (윤 일병의) 정수리 부분을 8대 폭행했습니다. 윤 일병이 그 충격으로 침상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이 병장이 '때리기 힘들다, 지 상병이 때려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지아무개(22) 상병이 엎드려뻗쳐하라고 하면서 윤 일병의 복부를 발로 3대 폭행했습니다.(중략)
 
3월 8~9일로 생각나는데, 이 병장, 이 상병, 지 상병이 어눌하게 대답한다는 이유로 돌아가면서 주먹으로 (윤 일병의) 복부, 가슴, 턱을 수회씩 폭행했습니다. 이 병장이 윤 일병을 기마자세를 하게 한 다음, 살려달라는 말을 할 때까지 2~3시간씩 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윤 일병은 5분에 한 번씩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라는 말을 했는데도 이 병장은 계속 가혹행위를 했습니다."(2014년 4월 7일, 김 일병의 진술조서)
 
김 대위가 폭행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파악을 마치고 나니 오전 3시가 넘었다. 자신도 포대장으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김 대위는 오전 일찍 대대장에게 이 같은 상황을 보고했다. 김 대위는 헌병대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 (의무반에 입실해 있던) 김 일병이 (윤 일병에 대한) 폭행을 목격하고도 바로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김 일병은 2포대 인원인데 천식 때문에 의무반에 있었습니다. 자기 일도 아니고 괜히 말하게 되면 피해가 올까봐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2014년 4월 7일 진술조서)
 
(2014년 4월 14일 작성된 지 상병의 피의자 진술조서에 따르면, 윤 일병이 쓰러진 그날, 김재량 상병 외에도 윤아무개(22) 상병, 김아무개(22) 상병에게 윤 일병이 맞아서 쓰러졌다며 폭행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윤 상병, 김 상병은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난 뒤에야 입을 열게 된다. - 기자주)
 
[고발 다음날] 윤 일병, 폭행 하루 만에 숨을 거두다
 
다음 날 아침, 부대 분위기는 여느 아침과 같았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김 상병은 오전 6시에 기상해 점호를 마쳤다. 점심을 먹고 사단 헌병대로 불려갔다. 참고인 조사였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1시간 40분 가량 진술했다. 헌병대 수사관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포대장에게 보고를 했는데, 보복이 두렵거나 후회는 되지 않느냐"고. 그는 대답했다.
 
"후회는 되지 않습니다. 승주와 승주 부모님들의이 억울함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1차 조사는 오후 4시 10분에 종료됐다. 조금 뒤 헌병대로 비보가 전해졌다. 윤승주 일병이 끝내 숨을 거둔 것이다. 동시에 가해 의무병들은 구속됐다. 유일한 목격자인 김 일병의 추가 진술에 이어 다른 병사들의 관련 진술이 이어지자, 가해 병사들도 더 버티지 못하고 자백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 3월 28일부터 4월 6일 사이 어느 날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이 병장이 윤 일병에게 기마자세를 시키다가 힘이 드니까 피해자(윤 일병)에게 안티푸라민을 가져다주며 성기에 바르라고 했었습니다. 안티푸라민은 바르면 뜨거워지는데 이 병장이 윤 일병에게 바르면 아플 거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윤 일병에게) 확실히 고통을 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멍이 든 걸 치료하려는 것이 아니고 (윤 일병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아무개 일병 참고인 진술조서)
 
문(수사관): "의무반에서 이 병장이 윤 일병에게 치약 한 통을 먹이는 것을 목격한 사실이 있나요?"
답(하 병장): "예, 이 병장이 승주의 입 안에 치약을 짜 넣어 먹였습니다. 제가 본 것은 1번 뿐이었습니다."
문: "왜 그러한 행위를 하던가요."
답: "그냥 이것 저것 여러 방법으로 힘들게 한 것 같습니다." (하아무개 병장 피의자 진술조서)
 
자정을 넘겨서까지 조사는 계속됐다. 김 상병은 오전 5시경, 부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기를 썼다.
 
"(7일) 16시 30분 승주가 세상을 떠났다. 몸에 힘이 쫙 풀리고 그냥 진이 빠졌다. 다시 깨어날 줄 알았던 승주가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넜다. (중략) (장시간 조사로) 많이 피곤했었지만 그래도 (가해 병사들의) 자백을 받아내니 마음이 많이 놓인다. 내일 18시에 외진을 아니, 조문을 간다고 하니 좀 자둬야겠다."
 
지난해 4월 11일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윤승주 일병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아들의 영정 사진을 붙잡고 통곡하는 윤승주 일병 어머니 곁에 선 김 상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 김 상병은 부대로 돌아와 일기장에 "이 바보 새끼, 어떻게 작별인사 한 마디 안 하고 그렇게 떠나냐"고 적었다.
 
"오늘로 의무반은 폐쇄됐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승주야 좋은 곳으로 가. 절대로 네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내가 잘 지킬게. 미안해, 안녕."
 
윤승주 일병은 떠났지만 후폭풍이 부대를 뒤집어 놓았다. 포대장도 부대원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져야 했다. 포대장을 비롯한 대대 간부들이 일제히 보직 해임됐고, 직무유기 등으로 형사 입건됐다. '마음의 편지' 작성 등 부대 정밀진단이 며칠에 걸쳐 진행됐다.
 
동료나 후임병사들은 김 상병에게 고마워했다. 부대 내 부조리가 많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상병을 바라보는 부대 간부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부대에 몰아친 칼바람을 원망하며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일까.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한 마디씩 싫은 소리를 툭툭 던지는 수준이었다.
 
"아~아! 네가 그 유명한 재량이냐?"
"저 새끼 때문에 (내가) 부대에서 장기 복무가 안 돼."
"전출 가고 싶지 않냐? 갈래? 말래?"
 
나중에는 김 상병에게 욕설까지 내뱉으며 인격적인 모욕을 주기 시작했다. 김 상병이 맡은 부대 업무와 관련해서도 쉽게 협조를 잘 해주던 간부들이 사건 이후에는 훼방을 놓거나 불필요한 일들을 더 벌여 놓았다. 김 상병은 3개월 넘게 간부들에게 시달리면서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고 했다.
 
김 상병이 정말 참기 힘들었던 것은 간부들의 괴롭힘만이 아니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윤승주 일병에 대한 기억과 미안함으로 그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그는 의무반에서 자행된 폭행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온 일상이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윤승주 일병이 부대로 전입오기 전이었다. 김 상병은 의무반에 갔다가 이아무개 상병이 이아무개(22) 일병의 뺨을 때리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 옆에 의무지원관인 유아무개(24) 하사가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유 하사가 가만히 있는 걸 보고 김 상병은 '(의무반에서) 구타가 일상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일화도 김 상병을 괴롭혔다.
 
윤승주 일병이 폭행으로 쓰러지기 1~2주 전의 일이다. 윤승주 일병과 지 상병이 의무반에서 본부포대로 걸어오다가 김 상병과 마주쳤다. 지 상병에게 경례를 한 뒤,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지 상병이 "본부포대에 간다"고 대답을 하는데, 옆에 있던 윤승주 일병이 김 상병을 보며 씨익 하고 웃었다. 김 상병은 윤 일병에게 "요새 군생활 할 만하냐"고 물었고, "예, 그렇습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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