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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라기 자료실

끊어야 할 고리

  • 박형주
  • 2015-09-08
  • 조회수 226


2015/에세이21/

이문옥 

 


  나는 60일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나오면서 ,'양심선언자를 보호하는 법'의 제정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독방에 앉아서 '미국에는 양심선언자를 보호하는 법이 있다.'는 어떤 교수의 칼럼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읽고 또 읽어 봤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고, 부패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에 관련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기로 했다. 우선 시민단체에 들어가서 다가오는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공약으로 건의할 문건에 그 법의 필요성을 실었다. 그 후 '양심선언자보호법제정'이란 주제로 첫 공청회를 열었다. 다음에는 새로 만들어진 시민단체가 그 일을 주도하고, 나는 법의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주로 했다. 입법 청원을 위해 국회의원들의 서명도 받으러 다녔다. 그 단체는 처음에는 '내부고발자보호법'이란 이름으로, 2차에는 '부패방지법'으로 명칭을 바꿔 청원을 했다. 그 일을 하면서 나는 19964월에 무죄판결, 10월에 파면처분취소 판결을 받았다.


  그해 11 4일에 나는 복직하여 감사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파면 처분으로 중단했던 강의를 다시 맡게 된 것이다. 긴 출장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6년 만에 각급 기관의 감사 담당 공무원들과 회계 담당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그 동안에 품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참 좋았다. 1년여 후에는 '부패방지법'의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의 의중을 잘 아는 분이 감사원장으로 왔다. 좋은 징조로 생각했다.


  내멋대로 상상도 해 봤다. 이 세상에 도둑질을 하면서 쉽게 들키도록 하는 도욱은 없지 않은가. 감사원이 찾고 있는 부패행위자도 마찬가지다. 그런 짓은 조직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홀로 저지른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은밀하게 진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은밀하게 진행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가까운 동료나 상사에게 알려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부패 행위를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와 관련이 없거나 직접 손해를 보는 일이 아니면 입을 다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알고 있는 내용을 반드시 신고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신분을 보장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게 그 법이다. 부패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 그 법의 제정은 감사원의 몫이라고... 그런데 감사원에서는 전혀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그런 실망감을 가슴에 안은 채 나는 1999년 말일 자로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날 정부가 내게 훈장을 준다고 했다. 갑자기 지난 일들이 반딧불처럼 빛을 발했다. 10년 전에 세력가들의 정경유착의 비리를 목격하고, 그 사실을 국민에게 알렸다가 감옥에 가고 파면까지 당했던 일과 , 부패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부패방지법의 제정을 위해 활동해 온 9년의 세월이 서명하게 떠올랐다. 거기다 아직도 사라질 줄 모르는 부패의 실상들까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훈장을 받을 수 있겠는가. 결국 나는 훈장 수여를 거부했다.


  그때 시중에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생겨난 많은 시민단체들이 그 법의 제정을 위해 일을 계속 진행하고 있었고, 그 법에 대한 국민의 여론도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부패 행위로 손해를 보는 약자들에게 호소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당장 노동자, 농민, 서민 등을 대변한다고 만들어진 정당에 들어갔다. 그 법에 대한 찬성 여론을 높이는 일에 집중했다. 집만 나서면 '부패방지법 제정'이란 글자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르고,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전철역의 환승 통로에 장승처럼 서 있기도 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지면 전철을 타고 조심스럽게 맨 앞칸으로 갔다가 맨 뒤 칸으로, 다시 맨 앞 칸으로 움직이는 광고판 노릇도 했다. 또한 노동자와 농민 집회는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번화가에서는 탁자를 차려놓고 서명을 받았다. 164일 만에 어깨띠를 벗을 수 있었다. 찬성하는 여론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그 법은 내가 그 일을 시작한지 11, 시민단체가 입법 청원을 한 지 7년 만인 2001년 여름에 '부패방지법'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세력가들이 좋아하지 않는 법이고, 여론에 떠밀려 만들어지다 보니 이리저리 잘려서 반쪽 짜리가 되었다. 하지만 공직자들에게 부패 행위를 반드시 신고하도록 의무 규정을 둔 것과 신고한 공직자들에게 훈포상과 보상까지 하도록 규정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양심선언자에게 배신자의 오명을 씌워서 감옥으로 보내고 파면시키던 세상과는 많이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해도 별로 과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는 부패행위가 상존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그 전에 양심 선언을 하고, 그 법의 제정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 중에 연금을 반액밖에 받지 못하는 억울한 분들이 있어도 철저히 모른 체하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의 세력가들에게 필요한 법이 아니어서 그 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지 싶다. 앞으로 그런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기나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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